2020

2020 연말정산 (2) 인간관계

ziin 2021. 6. 5. 22:59

 

 

2020 연말정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 소비

2. 인간관계

3. 정신상태

4. 목표와 성취, 도전에 관하여

5. 종합 2021년엔

 

2021년에도 과거를 청산하지 못할 위기.. 임박..

 

 

[2] 인간관계

 

1. 사람이 처음으로 귀찮아졌다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다.

 

"사람 없이 못 산다"

 

그랬었던 것 같다. 시간이 생기면 늘 친구를, 사람을 만나기 바빴다. 연말, 연초엔 1/3 이. 그러니까 한달에 10건 이상의 약속이 늘 있어왔다. 사람을 만나면서, 이야기하고 교류하면서 힘을 얻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사람 만나는 게 썩 즐겁고 유쾌하지 않았다.

 

이유는, 만나도 할 말이 없어서다. 반복되는, 무료하고 어두운 실패의 일상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크게 관심가지고 말할 수 있는 취미나 관심사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그걸 공유할만한 사람도 없다.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니 듣고 싶은 말도 없어졌다.

타인의 위로가 와닿지 않는 나. 별로 동정받거나 위로받거나 응원받고 싶지도 않고.

같은 처지끼리 만나 서로의 상처를 햝는 것도 한두번. 했던 얘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결론 없는 이야기만, 해결 되지 않는 문제만 반복하는 것도 이젠 지겹고.

 

그래서 약속을 잡으려는 노력을 최소화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겨우 만났지. 내가 먼저 나서서 만나자 주도한 일이 거의 없었다. 만나도 몸은 그 자리에 있지만 정신은 바로 옆 테이블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말을 해야 하니 하고, 웃어야 하니 웃고, 들어야 하니 듣고. 이유없는 의무감만 가득한 만남들. 처음으로 사람이, 만남이 지겹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처럼 충만해지는 만남들도 있었다. 주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1년에 한두번 만나는 사람들은 업데이트 할 내용이 많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새롭고, 나도 비교적 할 말이 많고 그랬다.

 

그래서 느꼈다.

 

아, 바쁘지 못한 상태를 그토록 불안해 하던 내가, 바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내 모든 가치관과 느낌, 사고가 송두리째 흔들리며 바뀌는 기분이다.

은연중에 나는 이럴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토록 바쁘지 않은 상태를 두려워했던 걸까.

 

여전히 나는 바쁘지 않은 지금 상태가 싫고 불안하다. 불만족스럽다.

바쁘지 않아 망가진 나의 상태가 어떤 줄 처절히 느낀 2020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해이길.

 

 

2. 성인애착유형: 회피형

 

전에 만나던 친구로 인해 알게된 개념, 성인애착유형

항간에 유행처럼 떠돌아다니며 그 근원도 애매한 MBTI와 달리, 이전부터 정신상담 및 분석에서 자주 쓰이던 개념이라고 하니,, 이런 유형검사들 안 믿는 나도 이건 좀 신뢰하는 편

 

나는 극심한 회피형 인간이다.

그걸 정확히 알게된 게 처음한 연애에서. 그렇게까지 타인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일이 지금까지 없었어서, 회피형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아 나 회피형 진짜 맞구나. 하고 느꼈다.

 

보통 성인이 되기 전, 가족관계나 교우관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나는 이 회피형 성향의 결정적인 이유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교우관계다.

 

중학교에서 여자애들의 친구관계란 참 복잡하고 또 섬세하며, 한편으로는 덧없다. 매해 반을 중심으로 몇 그룹이 나눠지고, 해당 그룹원끼리 등하교, 쉬는시간, 화장실, 점심식사, 점심시간 모든 것을 다 함께한다.

 

그런데 나는 이 '그룹'이, 매번 바뀌었다. 학기 초 형성된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나는 제외되었고, 그 이후 불안정하게 몇몇 그룹 내에서 '꼽사리'의 위치로 낑겨서 겨우 대놓고 왕따 포지션을 면하다가 진급해 새로운 반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반복.

 

그런데 매번, 나는 이유를 모른채 '자연스럽게' 그룹에서 제외되었다. 어느날부턴가 나를 빼고 이야기하고, 내 얘기를 잘 안 들어주고, 나만 빼고 화장실에 종종 가더니. 최종 선고인 급식팸에서 제외되었다. 차라리 특정 사건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라도 할 텐데. 눈치가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큰 사건 없이 나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성격이 별로여서였을 거 같다. 뭔가 사소하게 쌓이다가 빵 터진 거겠지. 근데 어쨌건 그게 뭔지, 뭐가 거슬렸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아예 일기장에 쓰면서까지 다짐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정 주지 말아야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쟤도 금방 나를 떠나가겠지. 백퍼센트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상황이 맞아 떨어지는 거니까 같이 있는 거겠지. 라고 되뇌이며 나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중고등학교 6년 남짓 해왔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연습의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나는 친구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친구에 대한 소유욕도 없다. 그래서 불편한 건, 누군가가 나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것. 솔직히 내가 1등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나는 보답할 수 없다. 나에게 덜 친한 친구는 있어도, 더 친한 친구는 없다.

또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도 별로 서운하지 않다. 뭐 그정도였겠거니, 한다. 오히려 나를 위해 뭔가를 포기했다고, 희생했다고 말하면 부담스럽다. 그것에 걸맞는 무언가를 해줘야 할 거 같은데. 뭘? 어떻게?

나를 만나려고 남자친구와, 다른 사람과 만남을 미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굳이?', '괜찮은데..', '나는 그런 걸 별로 원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도, 소원해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관계라는 게 나에겐 전제되어서일까. 아무런 기대가 없다.

 

그런데 연인관계에서는 다르다는 걸 해보고서야 알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only one이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only one에게 소중히 여겨지고 싶은 연애 초심자의 욕심. 남자친구만을 학수고대하며 온갖 미디어와 콘텐츠, 주변 사례를 긁어 모으며 풍선처럼 부풀리던 연애에 대한 망상은 고스란히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전 관계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애정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심은 지금까지의 인간관계 형성 방식과 태도. 그러니까 내가 허용하는 부분만 나를 알고, 간섭하고, 신경써야한다는 거리감과 당연히 충돌했다.

내겐 당연했던 타인과의 거리감이 회피형 성향을 가진 사람의 거리감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연인 관계'에서 처음 발견한 이 회피형 성향. 이젠 친구 관계까지로 올해 그 scope이 넓어졌다.

그 이유는 친한 친구의 불안형 성향의 강화. 나에겐 너무도 잦은 연락. 작은 변화도 캐치해서 그 이유를 캐묻는 것에 대한 당혹감과 부담스러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러니까 다른사람에게 집착하는 행동과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그 친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생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본인을 위해 나의 인간관계를 희생하라는 은연의 압박을 느끼는 순간. 아, 내 회피형 성향이 친구관계까지로 영향권을 넓혔구나, 그래서 이 현상들을 내가 이렇게 부담스럽게 인식하는 거구나. 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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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및 다짐

 

 

1. 내 일상이 남들에게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면, 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꺼릴 거 같지 않다. 그러니까 어서 일을 하자. 그러면 고민도, 문제도 해결

 

2. 회피형이 안정형이 되기 위해선, 타인에게 믿음을 좀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제부터 믿어봐야지!' 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시작을, 장기적 관계를 맺는 노력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한다.

지금까지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근본적인 기본 전제는 '금방, 언제든지 떠날 사람'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람을,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회피형의 대표 단어, '거리감' 좁히기.

사실 나는 너무 가까우면 불안하고 부담스럽다. 오죽하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옆집에 살고 싶지, 같은 집에 살고 싶지 않다. 감추고 싶은. 예쁘지 못한, 준비되지 못한 모습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사고를 넓혀보자면, 내가 타인과의 최소한의 거리감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긍정적인,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맞지 않는 모습들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이걸 오픈하라고? 아직은 거부감이 너무 크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이미지와 모습을 추구하지 말라는 건데. 그럼 나는 너무 보잘것 없고, 별볼일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한 번 더 파고 들어가자면,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남들에게 나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행동 자체를 개선하는 것보다는, 그저 숨기고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정도.

 

여기서 그럼,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다.

(1)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서 모든 것을 오픈한다. 그럼 이미지도 지키고 거리감도 좁힐 수 있다

(2) 이미지 추구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오픈한다. 이미지는 없지만 거리감은 좁힐 수 있다

 

아직 내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이 인식하는 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1번을 선택하기로 한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떳떳하게 나의 모든 걸 밝힐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해서 거리감을 좁혀야지.

 

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되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쓰고, 진정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어쩌고 저쩌고~

나도 이렇게 원인을 파고 들어가보니 자연스럽게 정답이 나오긴 하는데. 말 그대로 정답. 모범답안. 입바른 소리일 뿐. 모범답안보다는, 내 마음이 편할, 무엇하나 포기하지 않는 욕심쟁이 답안을 선택하면 안될까.

 

최소한 이번 2021년에는 내맘대로 답안으로 살아보련다.

역시나 이게 모범답안이 아닌 이유를 발견한다면, 그때 다시 모범답안으로 살아보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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