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10214: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ziin 2021. 6. 6. 08:36
영감

취업의 목전에서 쓰는 일기.

채용전환형 인턴십 3주를 마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전생에 쉬이 용서받지 못할 꽤나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 죗값을 치루는 중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을 상황. 그래서 지금 나는, 취업의 목전에 있다고 느낀다.

다만 그 결과 발표가 차일피일 연기되는 탓에 유예기간이 길어지는 중이다.
발표예정일을 넘기고서는 명확한 일정이 공지되지 않아 기약없는 기다림만이 계속된다.
주위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려던 계획도 다 무너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간이 참 덧없고 아깝다.

3년에 가까운 여정.
분명 작년엔 어디든 가자, 며 200개가 훌쩍 넘는 기업에 지원서를 난사했다.
그렇게 많은 기업에 지원하려면 지원 기준을, 기대치를, 마지노선을 낮춰야한다.
근데, 참 내가 주제도 모르고 눈이 높았었던 건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도 못한 채 대체 난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과거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기업들조차 나를 거부했다.

그냥 그저 취업을 위해서 난사하던 지원서 중에 몇 개가 말 그대로 '얻어걸렸'고, 그 중에 하나의 기업에 최종적으로 취업할 듯 하다.

이럴 줄 알았지만 정말 이런 느낌이 들어서 참 기분이 묘하달까.

-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읊조리던 말이 있다.

'아, 어중간한 데 취업할 바엔 그냥 지금 죽고 싶다'

그럼 사람들에게 '걔는 끝까지 했으면 결국엔 원하는 데 갔을 얘인데, 아쉽네'라는 평 정도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중간하게 취업해서 애매히 현실에 굴복하고 순응하는 그저 그런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보단 그냥 본인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용기를 내고 노력했기에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으로 보이는 게 낫지 않나. 뭐 이런 생각.

하지만 이건 사실상 도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실패하기도, 포기하기도 너무 싫고.
그래서 중간에 사라지는 거다. 의문과 가능성만을 남겨둔 채. 그럼 포기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다만 그걸 증명할 시간이 (타의적인 이유로) 부족했던 거라면,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결말이지 않을까싶다.

어쨌건 이건 말도 안되는 도피성 생각이기에 애써 그냥 읊조리며 뱉어버리고 다시 존버하곤 했다.

그런데, 실패가 기정사실화 된 지금, 이 생각이 다시 슬슬 들기 시작한다.

그건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의 등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3년간의 수면 속의 시간. 이 시간이 나의 경쟁력을 점점 앗아가는 시점에서 나를 수면 밖으로 꺼내준 구원자는 역설적이게도 내 목표 달성을 영원하게 한다.

굳이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열심히 끼워맞추고 의미부여를 하다보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서도. 이렇게 잡게 된 첫 직장, 첫 직무로 인해 앞으로의 커리어패스와 목표 달성이 참 어려워지겠다는 게 눈에 선하다는 것이 참 그렇다.

이젠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출발해야 한다고 급히 발을 뗀 이 길이, 꼬이고 꼬여 가장 돌아가게 될 길, 혹은 목표지점까지 닿지 못한 채 그 어딘가를 빙빙 돌게 될 길이면 어쩌지.

더 무서운 건, 현재에 익숙해지고 순응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그저 익숙해지면서, 나름의 성취와 행복을 찾아가며 목표를 잊거나 없앨까봐 무섭다.
목표를 좇음으로써 생겨나는 불확실한 미래와 힘듦을 감당하고 싶지 않으면 어쩌지.

한 번도 간절히 원했던 목표를 성취해 보지 못했기에,
직업, 직장에서만큼은 그 목표를 한 번만이라도 달성해보자는 내 마음이 사라질까봐 무섭다.

-

이젠 그저 어디든 취업하자고, 욕심을 버리자고 그렇게 계속 나자신과 재차 약속했으면서도
이젠 그 이유도 모를 목표를 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

사실상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이젠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마음 한 구석에선 기대하는 나의 모습.

내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잃은채, 포기를 모르는 내가 이젠 참 철없고 지겹다.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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