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10301: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다

ziin 2021. 6. 6. 08:37
낯선 익숙함의 발견

손에 꼽는 취업 후 버킷리스트 중 하나. 비아 탐방

유년시절을 보냈던 동네라서일까, 고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살아가면서 문득 그곳이 궁금할 때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미뤄왔던 방문

가뭄과 같은 긴 연휴에 굳이 새벽같이 고향에 내려가 비아 탐방을 하고 왔다.

기억을 더듬어가는 두 시간 여의 추억여행.
짧으면서도 충분했다.

근 20년이 흘렀는데도, 이곳에는 생각보다 그대로인 것이 많다.
학교도, 집 근처도, 놀이터도, 참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고 또 바뀌었다.
단 몇년 만에 휙휙 바뀌던 대학가의 속도에 익숙해져있었던 탓일까. 이젠 알아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이 무색하게 그대로인 곳이 많았다.

아빠가 지은 집, 그리고 그 주변은 익숙하지만 뭔가 바뀐 듯 했고
이후에 이사간 아파트는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았다(공허해진 놀이터와 새것이 분명한 엘리베이터만 빼고)

사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추억의 장소는 비아가 유일한 듯 싶다.
이후 이사간 동네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고, 서울에서도 지금껏 대학 근처에서 살고 있으니.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그린다면 사실상 유일한 장소다.

그런데 나는 추억을 더듬는 사람이었던가.
미래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 현재, 그리고 매우 드물게 과거 속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마음 한 켠에 줄곳 묻어두고 있었던 이유는,
돌이켜보면 내 삶이 제일 즐겁고 행복했을 때의 장소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때의 나도, 치열한 고민과 걱정이 있었겠지만서도
오늘날 기억하는 그때는 참 걱정거리가 없을 정도로 좋았던 것 같다.
교우관계도, 가족관계도, 학업도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것 같다. 소소한 즐거움과 희망이 가득했던 그때.

그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추억에 잠기니,
역설적이게도 엄마아빠가 보고싶어졌었다.
그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엄마아빠의 젊음이, 열정이 이제서야 느껴졌다.

특히 엄마는 정말 삶의 중심이 나와 내 동생일 정도로 우리에게 열과 성을 다하셨었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살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했던 젊은 엄마와,
너무 잘 키운 나머지 모두 서울로 출가해서 대부분의 일상을 홀로 지내는 지금의 엄마

두 엄마의 모습이. 그리고 아빠의 모습이 겹치며,
내 자신의 성공, 자유만을 위해 홀로 살아가는 내 자신이기에 느껴지는 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미안함.
그렇게 미안함만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작은 것들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은 하자. 라고 다짐하니,
애매하고 다소 무리스러운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내려오길 잘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남은 이틀의 시간은 오롯히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언젠가 또 다시 들른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처럼 세월을 간직한 모습으로 그저 그 자리에 계속 존재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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