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0708: 마음에 안 들어

ziin 2021. 6. 5. 22:50



내가 꼬인 건지. 아님 정말 걔가 이상해진 건지.

요즘 맘에 들지 않는다. 나 자신은 애저녁부터 싫었는데, 이제 친구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1. 나에겐 '내 사람'이란 단어가 어색하다.


크게 구분짓고 살고 있지 않다. 좋고 싫음 정도만 구분할 뿐,

 

솔직히 좀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랫동안 만난 사람과의 대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알고 지냈든, 자주 만났든, 사실 나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해서일까. 내가 누군가와 근거리에서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울리진 않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건 중고등학교 시절.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는 굉장히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쉬웠다. 동기만 몇 백명인 대형학과. 고등학교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수업을 같이들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거리에서 친할 수 있어 좋았다. 더하여 내 친구들은 모두 쉬지않고 연애를 했다. 당연히 우정보단 사랑. 연애하지 않았던 내가 늘 친구들에게 후순위로 밀리는 건 서운하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누군가를 '나의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 그냥 가까이 지내는 것 정도? 애초에 소유의 표현이 나는 굉장히 불편하다.


그런데 거리낌없이 나를 '내 사람을 굉장히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친구가 있다. 근 7년을 가까이서 알았으니, 나를 잘 안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난 굳이 정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걸 시도하는 순간 감정이 상하기 쉬우니까. '내 사람'을 끔찍히 생각하는 여린 친구에게, 난 사실 딱히 그러진 않고 그냥 모두에게 잘 해주고 싶다, 라는 말을 하는 건 힘들다. 그 친구의 '내 사람'인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건 공평하지 않은 거니까. 그런 거에 충분히 기분 상할 친구라서. 그래서 그냥 웃어넘겼다.


그 친구는, '내 사람'의 경계가 굉장히 뚜렷하다.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내 사람'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선물하며 이를 SNS에 올림으로서 과시아닌 과시를 하는 타입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내 사람'에 해당하는 나는 애정과 호의를 받는 중이다. 고맙다. 처음에는 계산하지않고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고맙고 귀엽고 순수해서 사랑스러운, 참 매력적인 친구라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그냥 좀 피곤하다. 예전의 나에 대한 정보를 드문드문 알고 있으면서 그걸 전부라 생각하며 칭찬해달라는 듯이 나에 대해 잘 아는 척 한다. 변한 나의 모습은 반영되지 않았을 뿐더러 과거 정보 또한 뭔가 본인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 느낌이다. 한 마디로, 날 잘 모르는데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걸 또 하나하나 정정하기엔, 이미 나에 대한 본인의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기에 알아채고 칭찬해달라는 어투와 분위기라서, 분명 정정하면 머쓱해하며 실망할 거라서 굳이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친구의 텐션을 맞춰주기 버겁다. 걔가 너무 업 된건지, 내가 너무 다운된 건지. 누가 변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친구의 텐션이 나에게는 버겁다는 거다. 난 스킨쉽이 매우 어색한데 이 친구는 만나자마자 얼싸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길을 걸으면 팔짱을 끼거나 손깍지를 낀다. 애정의 표현이라는 거 아는데, 난 아직도 어색하다. 만날 때마다 수백장의 사진을 찍는 것도, 그 사진이 전부 내 감성에는 과한 필터가 들어가있는 것도, 직접보정해준 사진들은(애초에 찍을 때부터 어플로 찍으니까 보정이 들어가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과도히 진행한다) 얼굴 비율이 망가져있을 정도라서 쉽사리 SNS에 올리기 힘들다는 것도. 난 다 힘들다. 예전엔 그저 만족스러워서 SNS에도, 카톡프사에도 올렸더니, 이제는 본인의 사진이 나의 카톡프사가 아니면 신경쓰고 자존심상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젠 내가 알아서 보정도 할 테니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저 며칠 친구의 사진으로 프사를 하게 된다.


예전에는 괜찮았던 것들이, 이제는 괜찮지 않아지고 있다.


2. 순수한 걸까, 멍청한 걸까


말 그대로다. 순수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이젠 그저 멍청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면 무작정스러운 긍정회로, 두 번 나아가지 못하는 생각들. 그래도 이상을 추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들. 내가 극단적인 현실주의, 나아가 염세주의로 빠져들고있는 걸까. 점점 친구의 긍정회로와 이상주의가 멍청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친구가 이번에 남자친구를 위해 많은 소개팅을 진행했을 당시 크게 느꼈다. 만인의 이상형에 해당하는 외모 조건에, 본인을 좋아하는 걸 왕창 티내면서 불도저처럼 표현하고 이끌어줘야하는 사람을 원했다. 더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는 건 당연하다. 그것도 소개팅 첫 만남부터. 현실적으로 20대 초반도 아니고 20대 후반의 직장인이 소개팅 첫 만남때부터 무작정 사랑에 빠지면서 그것을 여과없이 표현하면서 끌고가는 사람이 흔치않다. 오히려 그런 금사빠들을 조심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고 조언해줘도 아무 소용이 없다. 금사빠 친구는 첫 만남에 상대방에게 홀라당 마음을 다 주고, 사소하게라도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바로 칼같이 차단해버렸다. 그 '사소함'의 기준은 가히 남자친구 수준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나간 남자가 여러 명. 감사하게도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이 생겨 만난 지 이튿날부터 연애중이다. 행복하다는 그 친구를 보며, 그래 너가 행복하다면 되었지. 하고 넘어가지만, 그저 참 어리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만남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은 SNS에 생중계. 근데 요상한 것은 나와의 만남만 SNS에 올리지 않는다는 거다. 언젠가 물어보고 싶은데, 굳이 이런 거 물어봐서 본의아니게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지 않고. 그냥 이유가 궁금하긴 한데, 나쁜감정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그대로 말해줄 것 같진 않아서, 그저 궁금증으로 남겨둬야겠다.


3. 발전과 자존감 그 어딘가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요즘 가장 싫어하게 된 말이다. 이게 잘못된 것, 혹은 좋지 않은 거 아는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걸 어떡해. 어쩔 수 없어. 이게말이야 방구야. 제일 싫다.

 

같은 의미지만 '그러게, 그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계속 이래와서인지 잘 고쳐지지 않네'라는 말도 있는데. '원래 이렇다'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사람은 이미 고집이 생겼는데 이제 발전할 수 없지 않을까, 라고 반문하게 된다. 


어느샌가 자존감을 높이는 책이든 강연이든, 뭐 그런 데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이런 못난 모습도 나인걸, 인정하고 사랑해주세요' 따위의 말 때문인가. 성격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사람들이 맞추려는,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 같다. 그 친구도 같다. 인생에서 차단 및 일방적인 관계 맺음을 해본 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나에겐, 그 친구의 차단 목록은 가히 놀라웠다. 세상은 좁고, 언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니 적을 만들지 말자는 나의 모토를 친구에게 말해준 적 있다. 그 친구는 맞는 말이긴 한데 본인이 원래 이런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원래 이래서 어쩔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길까? 잘 끊어내지 못하는 나의 단점을 극복하는 중이다. 최근에 나를 갉아먹거나 부담스러운 인연을 끊어냈다. 이렇게 노력하면 되는 일을 굳이 '원래'라는 단어를 쓰며 극복하려는 노력마저 시도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일까? 차라리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격을 하지. 내겐 저런 어투는 최악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내가 소개팅에서 가장 먼저 요구하는 조건이 알아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걸.


 


중고등학교 때 제대로 된 친구관계를 맺지 못해서,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대학 이후에 형성된 관계들이다.

 

같은 대학 사람이라면 모두 이 친구를 알고 있고,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친한 친구를 흉보는 사람은 정말 인성적으로 별로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이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혼자만 앓기엔, 나는 이야기를 혼자 묻어두지 못하는 사람. 익명의 힘을, 그리고 열린 공간이지만 그 누구도 보지 않는 이 공간의 힘을 빌어, 써내려간다.

언젠가 다시 이 친구가 좋아져서, 이런 생각도 한 시기가 있었지 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지금 이 친구와 관계 유지하기가 상당히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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