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0624: 미뤄왔던 것,

ziin 2021. 6. 5. 22:49


드디어 읽어야겠다는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형광펜을 쳐가며 읽어야겠다며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온 게 1월. 6개월이 지나서야 했다.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대단한 책, 내 삶에 적용해야지 하며 흥분했었던 거 같은데. 몇 번이고 다시 봐서일까, 그정도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서사내용보다는 이론의 적용에 집중해서 읽은 것 치곤 막판에 눈물 뚝뚝.

무엇을 핑계로 뭔가를 계속 미뤄온 걸까. 
취업을 준비한답시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온세상의 잡다한 일이 가득한 SNS를 몇 시간이고 쳐다보는 건 그렇게 꼬박꼬박 했으면서.
해야겠다, 하고싶다 하는 개인적인 일들은 계속 미뤄왔다.

남들에겐, 쿨해보이려고 '마음의 여유가 요즘 없네'라는 말만 앵무새마냥 읖조렸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대체 나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의지를 탓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도 이젠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저, 나는 이런 모자란 사람이니까, 라 생각하며 비소를 머금을 뿐. 그게 다다.

24시간이 아깝다며, 시간의 밀도를 제창하던 나는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그렇게 살았던 거 같기도 한데. 그래서 난 뭘 얻었지? 결과가 있었던가.

한심한 준비로 인해 한심한 면접을 마쳤다.
같은 지원자들 상태를 보니, 이거 준비 좀 제대로 했다면 충분했을텐데.
무슨 배짱으로, 무슨 이유로 거의 준비하지 않고 면접을 치르러 갔는지. 이시국에도 기업을 고르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이 기회가 다시 올 지 알 수 없는데, 놓쳤다.

또, 기회를 놓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일 때, 사실 알고 있었으면서. 높은 어학 점수가 필요하다는 거.
그때도 안하고, 진짜 점수 필요할 때도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요행만 바라다가 또 기회를 놓친다. 나는.
가고 싶은 기업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발버둥 치지 않으며 기회를 놓친다.

그리고 또, 기회를 놓쳤다.
그토록 원하던 산업에 발을 붙여볼 수 있는 계약직 면접 또한 기회를 놓쳤다.
왜 난 대체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걸까. 간절한 건 생각과 마음 뿐. 그에 합당한 노력과 행동을 하지 않을까.

그러고서, 작년에 SK이노베이션 면접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오늘 SK경영경제연구소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스펙 기회를 놓치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종일 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한다고 한들, 기회를 만드는 것조차 가능할 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덜 뭉뚱그리자면, 내가 배터리에 계속 도전한다고 한들, 면접 기회조차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들조차, 내게 허락될 지도 모르겠다. 뭘 더 해야할 지 모르겠다.

배터리를 포기한다면, 사실 난 그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도 맹목적으로 해당 산업에 목을 매는지 나도 모른다. 이젠 달성해야만하는 목표, 오기가 되어버렸다, 이미. 그저 나에겐 성공과 실패만이 존재한다.

그냥 배터리를 버리고, 되는데 아무데나 들어가서 살아볼까, 라고. 오늘 가장 진지하게, 사실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도 아니고. 그냥 일단 지금은 되는대로 해볼까. 뒤쳐지는 이 느낌도, 내 자신에 대한 아무런 자긍심도 느낄 수 없는 지금 상태를 일단은 어서 벗어나볼까.

어제 처음 한 생각은, 회피하고 잊고 싶다는 거였다.
그동안 난 문제점이 있으면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지 써내려가는 편이었다.
이렇게 일기처럼 생각을 쓰고 있으면 해결책이 생각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제 처음. 그냥 다 필요 없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금세 나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이 지경까지 온 건가.

그렇게 반 쯤은 마음을 접고. 취업컨설팅 상담 기회가 다음달 초까지니까, 거기에서 팩폭 좀 두드려 맞고 아예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
꺼져가는 불꽃에 심폐소생술을 한 엄마의 카톡. 덴젤 워싱턴의 졸업연사.
하다못해 이발소에 가도 줄을 선다면 언젠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실패했다는 건 시도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넘어져라,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이런 말들이 가득했다.

하필 오늘, 그 영상을 보내준 엄마.
꺼졌던 희망에 자그마한 불씨를 지펴준다.
내가 지금 한 실패들은, 내 노력 부족으로 인해 놓칠 수밖에 없었던 기회들에 대한 깨달음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성공한 1%만이 할 수 있는 뻔한 조언, 뻔한 희망고문 명언들이 많았는데.
그걸 본 게, 오늘이라서.
그냥 포기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로 가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들던 오늘이라서.
또 그 영상 보다 눈물을 찔끔. 요즘 눈물이 헤프다.

이렇게 생각했다가도 금방 포기할 수도 있다.
내가 포기한다고 그 누구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니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오기도 약빨이 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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