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0801: 대충 산다

ziin 2021. 6. 5. 22:52

 

요즘 대충 산다.

두 의미 다 맞다. buy & live.

 

# 1 _ 대충 산다(buy)

 

물건의 하나부터 열까지... 가격은 물론 크기, 후기, 예상 사용 빈도 수 등등. 모든 걸 고려하며 구매를 망설였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대충 산다. 키워드는 '이왕이면', '마침', '예전부터'.

 

예전부터 요거트 용으로 사고싶었던 작은 볼. 마침 배송금액도 맞춰야하고, 집에 있는 접시가 몇 깨졌으니까. 접시크기가 가늠이 안되는 와중에 10.5cm와 14cm 중 이왕이면 큰 걸 사자는 마음에 샀던 JAJU의 유리 볼. 도착한 건 투명한 국그릇. 토핑을 푸짐히 올려도 절반이 채 안 찬다.

 

가용금액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왜이리 소비에 둔감해진 걸까. 작년 말에 소비에 관해 쓴 글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취향저격 당해버려 고민끝에 스타벅스 유리 텀블러를 사고 나서 쓴 글.

취향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긴 요즘
절대적으로 사용하는 금액은 비슷하지만,

좋은 걸 하나 사는 습관, 그리고 상황 상 꾸밈과 치장에 드는 돈이 줄어들다보니 가능해진 취향을 위한 소비

 

 

소비의 키워드가 '가성비' > '무소유' > '취향' 으로 변해갔는데, 이젠 크게 키워드를 잡을 정도로 의미롭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그 어느 때보다 '돈'에 무감각하다.

 

버는 건 많이 벌고 싶다. 당연히.

그런데 쓸 때는, 돈은 많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거지~ 하며 초월적인 마인드가 생겨난다.

물론 기본적인 상황은 비슷하다. 쓰는 돈은 비슷하며 늘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는 통장 잔고를 걱정하며 못 사거나, 아끼는 상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일단 사고 본다.

 

정확히 말하면 '아깝다'라는 생각을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 비싸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달까. 그냥 그게 그 가격인가보다, 근데 난 이걸 원한다, 그럼 소비! 하고 사고회로가 끝나버리는 느낌?

 

내 소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요즘 나 소비에서 만족을 찾는 건가 싶다. 원하는 것들을 거의 갖지 못하는 요즘, 소비가 성취의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정확한 금액만 내면 100% 목표달성이니. 이렇게도 명확한 대상에 높은 성공율, 그리고 내가 어느정도 자원을 투자해야하는 지도 바로 계산 가능한 게 내 일상에 뭐가 있을까. 심지어 기분도 좀 좋아져! 그 증거가 바로,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사는 것. 아직 택도 떼지 않은 옷들이 옷장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늘 선저축 후지출이라서 가산을 탕진하지는 않는다는 점. 이렇게 간추려서 극적으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그래도 일단 몸에 배인 절약정신과 경제관념은 존재한다는 것.

 

엊그제 아빠가 한 말. 지금 소비습관이 평생 간다며 너무 아끼지 말고 쓸 때는 쓰라는 말이 생각나서 적어봤다. 아빠, 더이상 소비습관이 널널해지면 앞으로 좀 고생할 거 같아요

 

 

 

# 2 _ 대충 산다(live)

 

본가에 내려간 건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무언갈 하기 위해 필요한 건, 타인의 시선. 가족 눈치를 봐서라도 공부 좀 하려고 내려갔다. 그리고, 분명 하긴 했다. 근데 '하는 것'에 너무 의미를 두었다. 합격할 만큼 했어야 했는데, 난 그냥 공부를 '했다'.

 

애초에 짧은 준비기간에 매우 타이트하게 계획했던 일정. 중간에 면접본다고 서울 왔다갔다 하느라 며칠 밀려버렸는데도 make-up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합격을 위해서라면 남은 기간 동안 공부시간을 늘려서라도 다 해냈어야했는데, 대체 뭐가 그리 느긋한 나는 꼬박꼬박 오전에 잠을 잤고 저녁식사 후엔 야구를 챙겨봤으며 공부시간에도 크게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 하루 전, 사실 희망을 놓지 않았다. 부족하지만, 하루 벼락치기 하면 될 거야라고 내심 내 어딘가를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동시간만 6시간. 오전에 두어시간 공부하고 나서 다시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저녁 10시. 서울에서의 시험은 오전 9시.

 

계획은 이동시간에 손도 대지 않은 4교시 과목을 끝내는 거였다. 타 과목 내용들을 영어로 출제하는 것이니 단어만 익히면 되는 거고, 내용은 이미 알고 있으니 부담이 적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왜일까?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하기가 싫었다. 합리화 생각은, 어차피 오늘 밤 새야하는데 버스 안에서 이거 보고 있으면 피곤해서 잘 거 같으니 그냥 여기서 쉬고 서울 가서 공부하자는 것.

 

그렇게 10시에 공부를 시작했다. 모의고사 한 회를 푸는 데는 3시간이 걸린다. 오답까지 끝내니 3시. 집에서는 7시 30분에 출발해야하는데. 남은 4시간 30분 만에 손도 대지 않은 한 과목을 끝내고, 단 한 번도 합격권에 든 적 없는 모의고사 점수를 합격권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잠시 눈을 감았더니 5시. 혹시나 싶어 4교시 모의고사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몇 문제 풀다보니 느낌이 왔다. 안된다.  기적을 바라는 수준이다 이정도면.

 

그래서 시험장에 가지 않았다. 기적을 바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기 위해, 비오는 날에, 복사집에 가서 수험표를 뽑아, 2시간 왕복하여 시험장에 가서 4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나 요즘 대충 산다. 그 밀도가 어찌되었건 2주 동안 시간과 약간의 스트레스를 소비하며 준비했던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으니. 노력과 시간을 이렇게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삶이다. 지난 2주,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으면 그 시간에 의미부여라도 하지. 가장 쓸모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젠 하반기 취업을 위해 발버둥칠 수 있는 게, 그때그때 자소서를 작성하는 것과 어학점수를 올리는 것 정도?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할 지 모르겠다. 인턴도 잘 되지 않는 요즘. 바로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외국계 파견인턴 뿐일까.

 

관성에 몸을 맡기면 지난날 그랬던 것처럼 남은 시간도 대충 살 거 같은데, 난 이제 뭘 하지. 이젠 누가 좀 알려줬으면. 취업전문가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던데. 난 또 어떤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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