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0723: Prima Donna

ziin 2021. 6. 5. 22:51

이젠 풀을 사먹어도 돈이 아깝지 않다

그렇다,

일기를 쓸 생각이 들었다는 건, 생각할, 다짐할, 곱씹을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

 

1. 의지가 없다면 환경을 바꿀 일

 

의지박약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 나 자신.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공백기 속에 뭐라도 채우긴 채워야 하는 시간들.

좀처럼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이젠 그만 믿어보고, 본가에 내려왔다.

 

의지라는 말도 그닥 필요해보이지 않는, 계획과 끈기와 성실함의 화신인 동생 옆에 일단 앉아라도 있으니 뭐라도 하긴 하게 되더라.

이로써 판명. 내 의지의 원동력은 타인의 시선이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취준의 실패들은 고사하더라도, 자신의 계획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기 싫어서 본가에선 그나마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혼자 살면 안될 거 같다. 나에겐 혼자만의 공간은 불필요하다. 그 공간에는 그저 나태함만 가득할 뿐,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지난 2년 간 느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나 자신의 이미지를, 시선을 신경쓰는 걸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그저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 될 거 같기도 하다. 아직은 생각에 불과한 이야기. 다만, 자유로움과 생산성이라는, 선택의 기로가 곧 다가올 것 같다.

 

2. Prima Donna

 

오페라의 유령 ost에서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 화려함의 극치. 르네상스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라 생각한다. 물론 르네상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

 

갑자기 이 노래가 듣고싶어져서 틀었더니 어제 밤부터 계속 반복재생. 일기를 써야겠다 마음먹고나니 자연스럽게 정해진 일기 제목.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뜻을 찾아보니, 그럴 줄 알았다. 오페라의 주역 여자가수라는 뜻 말고도 하나 더 있다. [자기가 아주 중요한(잘난) 사람인 줄 아는 사람]. 내 얘기 하니까 끌릴 수밖에 없었네.

 

언젠가부터인지, 욕망을 그리는 노래에 꽂힌다. 최고가 되고 싶다거나 뭐 그런 노래 가사들. 런닝머신 위를 달릴 때 반복재생으로 끝없이 들으며 나의 주제곡을 꼽는다면 이 노래로 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세간의 노래들은 대부분 사랑 노래라, 이런 욕망 가사들은 주로 뮤지컬 영화 ost에 등장한다. 하스뮤의 I Want It All이나, 위대한쇼맨에 Never Enough나.. 오늘로서 Prima Donna도 추가!

 

생각해보면 런닝머신 위에서 읖조리는 노래가사는 흡사 내 자신에게 거는 최면에 가깝다. 자꾸만 작아지는 내 자신에게 거는 최면. 난 이래도 돼! 난 욕망 덩어리야! 더 많은 걸 원하고 가질 거야! 라는 주술.

 

이렇게 주술까지 걸며 살아가는 나는, 아마 프리마돈나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의미 말고 두 번째. 나는 분명 중요하고 잘난 사람인데, 점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실망하고, 또 실망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내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이젠 근거도 없다. 스물여섯이면 이제 현실을 인정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어리석다, 참.

 

성취하려면 끈기가 필요하고, 끈기에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고, 믿음에는 아주 작은 성공 경험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성공이라고 말할 게 없는 요즈음. 멘탈만 믿고 버티기엔 이제 슬슬 힘이 부친다. 그래서 그 '작은' 성공 경험을 위해 '작은' 것들을 해보는데도, 그것 마저 실패한다. 나 어떡하지. 역설적이게도 눈을 낮추는 과정에서 또 내 자신이 작아진다. 여기 쯤이면, 그리고 직무 경험 있으니까, 다니면서 다른데 준비하자고 생각했던 곳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어디까지 작아져야 난 성공할 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닐 수, 끈기를 가질 수, 성취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이렇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대단함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 아득한 간격 때문에 오늘도 참 힘들다.

 

3. 사는 방법

 

다들 사는 이유가 하나씩은 있겠지. 살아지는, 살아가는 이유.

그저 숨을 쉬니 살아지는 거겠지만, 그 숨을 쉴 이유가 작게나마 있지 않을까.

 

오래 살고 싶지만, 요즘은 살고 싶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갈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목표도, 의무도 없는 나날. 왜 살고 있고, 오늘은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야할 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일에, 연애에, 꿈에, 아름다움까지 가지고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이십대의 청춘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내 삶에 대한 애착을 감소시킨다.

 

이전까진 배터리 산업에 취직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업컨설팅 이후, 그건 정말 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할 것 같다, 스펙파티인 그곳에 나이까지 먹어버린 나는 이젠 가망이 없다는 완곡한 어투의 진단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살아가야하는 걸까.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는데. 그저 순간순간의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야하는 걸까. 먹고싶다, 자고싶다 같은, 기초적인 욕구의 충족을 기다리며 보내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서 요즘은 살고 싶지가 않다. 작은 것들을 행복이라 자위하며,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게 나에겐 의미가 없다. 죽음은 무섭지만 살고 싶지는 않은 모순.

 

방금 찾았다, 나의 사는 이유. 나는 죽음이 무섭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생각이란 것도 할 수 없는 영겁의 상태가 나는 무섭다. 그러니, 살아가야겠다.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직한 자소서 (1) 성격의 장점  (0) 2021.06.05
200801: 대충 산다  (0) 2021.06.05
200708: 마음에 안 들어  (0) 2021.06.05
200624: 미뤄왔던 것,  (0) 2021.06.05
200517: 독한 사람이 되고자  (0) 2021.06.05